루만의 사회체계이론 이해할 수 있을까?

華胥之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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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2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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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새로 설립된 빌레펠트 대학 사회학부는

교수들에게 수행하고 있는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보고를 요청했다.

이 때 니클라스 루만은 "사회 이론; 기간: 30년; 비용: 없음"이라 대답했다. (루만, 1997, p.11)

 

루만은 제텔카스텐(메모 상자)을 활용해 체계이론을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체계이론의 전반적인 흐름과 그 구성이 제텔카스텐 정리 방식과도 유사하게 느껴졌다.

 

이하 내용은 체계이론에 관한 문헌 가운데 이해한 부분들을 정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체계이론의 일부만을 다룬 셈이다.

그럼에도 이해하려고 노력한 과정에 의의를 둘 수 있겠다.


니클라스 루만


1.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의 근원이 되는 것은 '주체'가 아닌 '체계' 이다.

그는 그동안 전통 사회학에서 사회의 필연적 구성요소로 간주되어온 '주체'라는 개념을 제외시켰다.
이렇듯 '주체'를 설정하지 않고도 체계적인 사회이론을 구축한 것이다.

 

2. 

루만의 체계이론에서 '주체'(인간)에 주목하지 않은 이유는 구유럽적 인본주의 전통에서 지지를 받고 있던 주체적 인간 개념으로는 기능중심으로 분화되는 사회적 진화의 동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루만의 이론은 근대적 주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동일성이 아닌 차이에 기반한 이론이다.

이는 해체 철학의 사회학적 구현인 것이다.


Luhmann's schema pointing the main elements of his social systems theory. Source: Luhmann (1995, p. 02)


4.

루만은 기존의 패러다임과 결별을 선언했으나, 정치적 진보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어떤 이상을 추구하는 학문에도 회의적이었고, 오직 실재를 정직하게 바라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고전 사회학적 패러다임에 집착하다보면, 현실과 동떨어지게 될 것이라 평가했다.

 

5.

부르디외가 현대사회를 "계급이 분화된 사회"로 수직적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보았다면, 루만은 이와 다르다.

루만에게 있어 근대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된 세계로써, 중심과 주변에 따라 분화되거나 계층적으로 분화된 전근대사회와 결정적으로 구분"된 사회이다. 여기에는 중심이나,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6.

루만의 체계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체계' 자체가 아니라 '체계'와 '환경'과의 구분, 관계이다.

체계는 경계를 갖는 복잡한 구조이다. 이러한 체계에서, 정의된 부분을 제외한 모든 것, 즉 체계가 아닌 모든 것은 환경이 된다. 다시 말해 체계는 환경에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이다.

 

7.

루만은 체계를 크게 생물체계, 사회체계, 심리체계로 구분했다.

인간의 몸이 생물체계이고, 인간의 의식이 심리체계이며, 회사, 가족, 언론 등이 사회체계에 해당된다.

그리고 사회체계는 커뮤니케이션을 생산한다.

 

8. 

체계는 환경과의 구별을 통해 경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자기생산, 유지, 기능하는 폐쇄적·자율적·통일적 단위이다.

이 때 체계의 최소단위는 '주체'가 아닌 '커뮤니케이션'이다. 사회는 주체들의 집합도 아니고 행위의 집합도 아닌 것이다. 

 

9. 

루만의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또한 모두가 합의에 이르는 상황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근대 사회가 지나치게 통합되어 위태롭게 되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는 합의할 수 없음에 합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이론에서 특히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첫째는 기존의 이론들(구 유럽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했다는 점이다.

마치 사고의 전환과 같다. 우리는 그동안 사회의 필연적 구성요소로 '인간'을 포함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만은 과감히 '인간'을 제외시켰고, 전혀 새로운 방식인 '체계'라는 것으로 사회를 관찰했다.

 

둘째, 합의할 수 없음에 합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 즉 개인의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현대 사회에서는 이전 보다 더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특정 입장이 옳다 그르다 결론 내리는 것보다, 접점에 다가가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본다. 합의할 수 없음에 합의할 수 있는 능력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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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Anja Pratschke, Media art: aesthetic and social systme, Nomads.usp, 2010.

서송석, "니클라스 루만의 인간과 주체 개념", 『한국독어독문학회』, vol.58, no.2, 통권 142호, 2017.

오마이뉴스, "하버마스는 지고, 루만이 뜬다?", 2007.

김덕영, 『환원근대』, 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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